한번은 친구의 카카오톡 대화명이 "토마토가 될래요" 여서 무슨뜻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썼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,
예전~에 <토마토>라는 드라마에서 김희선이 했던 말도 그랬던 것 같다.
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은 함께 있으면 불안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.
그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고 추측해서 내 자신에게 이해를 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.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될지라도 나는 머리속에서 한번 필터 시켜서 걸러낸 속을 보이는 것보다는 그 사람의 진실된 생각을 아는 것이 훨씬 낫겠다 생각한다.
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이 있다면 돌리지 말고, 피하지 말고, 남이 알아주겠거니 바라지 말고 그냥 해야 한다는게 내 입장이다. 속마음의 고백도, 죄의 고백도 다 우리가 내 자신과 주위사람들에게 하는 배려이다. 이제 비밀이 많은 사람은 싫다. 비밀이 많은 사람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.
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.
카톨릭 교회에서 고백성사를 하는 것도 나의 죄를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는 것이다.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있고, 그것을 드러내야 할 때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. 물론 하느님은 우리의 깊은 내면과 비밀까지 다 알고 계시지만, 그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는 것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태도로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한다. 친구 사이에서도 마찰이 있어도 대화 끝에 더 굳어진 우정을 발견 할 수 있듯이, 우리가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방법에서도 communication은 정말 중요하다.
"How can you say, ‘You will become free’?”
Jesus answered them, “Amen, amen, I say to you,
everyone who commits sin is a slave of sin.
A slave does not remain in a household forever,
but a son always remains.
So if the Son frees you, then you will truly be free."
Jn 8:31-42
주의 기도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:
"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"
신학자 Scott Hahn의 말에 따르면 저기서 "저희"는 human이다. 고백성사로써 사람이 하느님 함께 하시는 자리에서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고, 나는 신앙적은 측면을 벗어나서, 우리도 사랑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.
주의 기도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:
"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"
신학자 Scott Hahn의 말에 따르면 저기서 "저희"는 human이다. 고백성사로써 사람이 하느님 함께 하시는 자리에서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고, 나는 신앙적은 측면을 벗어나서, 우리도 사랑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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